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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592년 4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를 통일 후 대륙을 통일하는 꿈을 꾸었고 조선에게 교섭을 요청합니다. 조선과의 교섭이 결렬되자 왜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조선 초기 설치된 국방 체제의 붕괴 후 비변사가 설치되었으나 재정 부족 문제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방문제에 소홀했던 조선은 왜군의 대규모 침략에 임진왜란 발발 후 15일 만에 한양을 빼앗깁니다. 왜군의 목표는 조선을 정복 후 발판으로 사용하여 명나라까지 정복하는 것으로 수세에 몰린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킵니다. 조선은 육지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선조까지 의주로 피난을 떠난 상황입니다. 당시 조선이 소유한 판옥선은 모두 250척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왜란이 발발하자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대는 거의 전멸하였으며, 전세가 불리한 지역의 수군이 흩어진 상황이 되어 전선의 주축은 전라도 휘하의 수군이 되었고 그 지휘를 이순신 장군이 맡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 더하여 이전 왜군과의 전투 출동에서 거북선이 파손되고 왜군에게 거북선의 도면 도난 및 수군 내부 지휘자들의 의견 충돌으로 계속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왜군에게 승리한 이순신

수세에 몰린 조선에는 전세를 바꿀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 이억기와 함께 남해 노량에서 합류하여 위기의 조선을 구하기 위해 왜군을 격퇴할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합니다. 왜군의 수군을 이끄는 장수 와키자카 야스히루는 견내량에 정박 후 조선 수군을 견내량으로 유인하여 좁은 수로에 몰아넣고 격퇴할 전술을 준비합니다. 이순신은 이에 걸려들지 않고 반대로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려 유인책으로 3척의 배를 보냅니다. 그러나 왜군이 쉽사리 유인에 걸려들지 않고 총포만 낭비되어 되려 우리 유인책이 위험해진 상황에 일본 수군이 두려워하던 배 복카이센이라 불리는 거북선이 등장합니다. 한산도 앞바다로 왜군 유인에 성공한 이순신은 우리 함대를 이용하여 학익진을 펼치고 일시에 총포를 쏟아부어 왜군을 전멸시켜 큰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 해전의 승리로 적의 주력 수군이 전멸하여 조선이 다시 제해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조선 수군은 연이은 승리를 거두게 되어 승기를 잡게 됩니다.

 

장군의 모습

영화 한산은 명량에 이어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그리는 3부작 영화 중 2부입니다. 이번 영화는 한산 대첩을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3부작 영화를 통해 이순신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한산에서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지혜로운 장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전작 명량과 달리 학익진의 운용과 이순신 장군이 전술을 고민하는 모습이 자세히 다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실제 당시 거북선에 대한 거북선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참고하여 임진왜란 개전 초기 전투에서 가장 실용적으로 생각된 거북선의 디자인을 채택하여 거북선 디테일에 큰 신경을 써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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